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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고택

위치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 21-19(의양3리 288번지) 만산고택

전화번호 : 054-672-3206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 경북 여행의 하루 몸을 쉬었던 만산고택. 참고로 부석사에서 차로 20분, 안동까지 차로 1시간 20분 가량 걸리는 위치에 있다. 우리 일정이 첫째날은 영주 지역, 둘째날은 안동 지역 여행이라서 이곳에 숙소를 정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옛 문화재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고택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평소 쉽게 접해볼 수 없는 옛 모습 그대로의 한옥이라서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서 결정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을 먹고 만산고택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다음이었다.

오늘밤 우리를 책임져 줄 고택. 고택의 여러 방 중에서도 서실에서 묶게 되었다.

해가 떴을 때 들어왔어도 좋았겠구나 싶었는데 겨울이 오는 시기라 일찍부터 어두워졌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만산고택은 강용 선생님의 4대손 강백기 할아버지가 관리하고 계셨다.

아궁이에 군불도 넣어주시고 바닥 난방도 따로 넣어주셨다.

간단하게 고택 사용설명을 들은 후 우리는 바로 눕방으로 들어갔다. ㅎㅎ

바닥은 따뜻한데 웃풍이 있어서 이불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누워있어도 얼굴로 바람이 막 통한다는.. ㅎㅎ

요즘 현대식의 2중창이 아니라 한지를 바른 문틈 사이로 찬 공기가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차가운 겨울밤 공기와 홀로 떠 있는 달빛과 고택에 문풍지 사이로 새어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내가 있는 이곳이 고택임을 실감나게 해 줬다.

고택의 가장 큰 불편함은 씻는 곳과 화장실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곳이라 개보수가 마음대로 안된단다. 그래서 화장실도 푸세식에서 수세식으로만 변경 가능하고 그 외는 안된단다. 푸세식 화장실이 아닌것만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예약할때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콧김이 나오는 날씨에 신발을 신고 10여미터를 걸어가야 도착하는 화장실을 막상 경험하고 나니 추울때는 아니야~~ 라는 마음이... 하하 ^^;;;;;;;;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아이들도 있다고 난방이 되는 화장실을 제공해 주셔서 그나마 덜 춥게 씻고 볼일볼 수 있었다. 본래 숙소에서 사용해야 했던 욕실은 문틈 사이로 찬바람 슝슝 들어오는 곳이다.

우리가 제공 받았던 난방되는 화장실은 아래 사진 속 제일 왼쪽에 불켜진 조그만 창문 안쪽이다.

간단하게 샤워기, 세면용품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마 관리하는 방 옆쪽에 있는 화장실이라서 그나마 고택의 중요한 영역에 들어가지 않아서 나름 현대식으로

이곳에서 신발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야 한다. 나중에는 다시 신발을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이 화장실 다니는게 쉽지 않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화장실에 더 자주 가고 싶고 왠지 물도 더 마시고 싶고,,,,,, 하는 심리가.....

다음날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화장실 자주 안 가려고 물도 잘 안 마시고 계속 참고 그랬던 듯.. ㅎㅎ

하루 밤을 이야기 하자면 바닥은 뜨겁고 코에는 찬바람이 드나들고 이불을 걷어차면 춥고 덮고 있으면 덥고..

이불을 깔았으나 딱딱한 바닥이라 한번씩 몸을 돌려줘야 뼈가 아프지 않다는... ㅎㅎㅎㅎ

나 어렸을 적 살았던 옛집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그냥 그리 살았던 터라 불편한지도 힘든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편한 세상을 경험한 지금은 불편하고 힘든 하루였다. 사람 마음이라는 간사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나름의 감동을 선사해 준 하루였다.

아침이 밝아 왔다.

아이들인 이른 아침부터 벌써 신이 났다. ㅡㅡ;;; 방은 분명 2개인데 한방에 있는 듯한 느낌은 뭐지?

어쩔수 없이 일어남.. ㅠ.ㅠ

저녁보다는 춥지 않으니 한번 고택을 둘러보기로..

어두워 보이지 않던 고택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만산고택은 고택으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각각의 건물마다 현판이 걸려 있는데 현판들이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가 묶었던 서실 사진.

서실의 왼편(사진기준)에 적힌 현판이 영친왕의 친필 현판이다. 8세에 적은 글이라고 한다.

한묵청연(翰墨淸緣) 학문에 정진의 뜻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진품은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사랑채 사진>

사랑채에도 유명한 현판이 있다.

'만산'이라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하사 하였다고 한다. 왕실과 친한 관계이셨던 듯..

별채 뒷마당에는 전통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투호도 있고 널뛰기도 있다. 아이들이 신이나서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같은 풍경인데도 어제 밤에 봤을 때와는 사뭇 또 다른 모습이다.

어두운데다 짐 옮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고택 입구쪽도 나가 보았다.

입구에 만산 고택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고택 입구 쪽에 만산고택 설명이 있다.

*만산 고택은

[이 건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인 만산 강용이 고종 15(1878)에 지은 것이다.
강용은 중추원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고 1910년 이후에는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면서 마을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그곳에 올라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를 읆었다고 한다.
가옥의 앞쪽에는 11칸의 긴 행랑채가 있고 가운데에는 솟을 대문이 있다. 안쪽에 사랑 마당이 있고 서쪽에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 모양으로 있다. 가옥의 왼쪽에 서당을 두고 오른쪽에 별도의 담장을 둘러서 별당을 배치하였다.
사랑채의 앞쪽에는 대원군이 쓴 '만산'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서당의 '한묵청연'이라는 편액은 영친왕이 8세에 쓴 글씨라 전한다.]

<고택 입구 사진>

조금 이른 시간에 와서 고택의 면면을 천천히 둘러보고 더 여유롭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집 떠나 먼곳에 와서 색다른 집에서 색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도 불편해 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라서 그런지 무척 즐거워했다.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들인 듯...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준 만산고택이다. 고마워요 만산고택~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마구마구 묻혀와서 그 세월의 지혜를 품고 올 한해도 잘 마무리해 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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