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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철기가 등장하면서 생산력이 증가하고 군사력이 강해졌다. 따라서 철을 소유하려는 지배자의 욕망은 더욱 커져 갔다. 철을 얼마나 소유했었는지가 권력을 상징하는 지표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은 다시 철제 무기의 발달을 가져왔다. 철이 만들어 낸 생산력 증가가 '성장'을 의미한다면,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파괴'를 의미한다.
철기의 사용은 생산력의 증가로 이어져 사회 제도와 계급의 세분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철기 사용과 생산력 증가는 사회를 고도화 시켜 고대 국가의 성립 밑바탕이 되었다. 고대 국가에서는 지배층만이 철을 소유할 수 있었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진한과 변한, 마한의 철기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몇 천년 전의 시대가 교감 하게 되는 구나. 박물관의 매력~~~
마한의 철기 : 삼한 중 마한이 가장 먼저 연나라의 철기를 받아들였다 마한의 철기는 대부분 주물로 녹여 만든 쇠토끼, 쇠낫과 같은 농, 공구였다. 마한 사람들은 철기를 귀하게 여겨 지배자들의 무덤에도 넣었지만, 스스로 철기를 만들려고 시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마한은 이후에도 한반도 북부지역에 있는 고조선과 낙랑군의 철기 문화에 영향을 받지만 독자적인 철기문화로는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진한과 변한의 철기 : 진한과 변한은 마한보다 늦게 철기를 받아들이지만, 일찍부터 스스로 철기를 만들려고 시도하여 독자적인 형태의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외날 따비, 철제 단검, 측면에 융기선이 있는 쇠도끼 등은 진한과 변한 권역에서 보이는 철기들의 특징이라고 한다. 진한, 변한 권역의 철기 문화는 가야, 신라의 철기 문화로 이어져 우리나라 고유의 철기 문화를 이끌어 가는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황남대총.
지배층이 철기를 독점한 사례로 볼수 있는 신라 황남대총.
무덤의 크기와 그 안에 넣은 부장품은 무덤 주인의 정치, 경제적 힘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대 무덤에 부장된 철기는 처음에 농기구 한 두점만 들어가다가, 나중에는 칼과 같은 무기가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철을 만들기 위한 소재를 화폐처럼 넣었다. 무덤에 무기를 부장하는 것은 사자가 생전에 용맹한 전사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으로 추측된다. 철의 소유는 당시 권력자의 특권이었다고 한다.
<등울>
등울은 돌방무덤 안에 등잔을 올려 놓는 등잔 받침이다.
<덩이쇠>
<고리자루 큰칼>
칼이 가진 상징성은 선사에서 고대, 중세, 근세로 이어진다.
칼은 당시 유행에 따라 재질과 형태가 달라지지만, 강격함을 드러내는 칼의 속성은 권력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유지된다.
백제가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칠지도(七支刀), 뱀처럼 구불구불한 사행검(蛇行劍), 지도자의 통솔과 승리를 의미하는 사인검(四寅劍), 용이 장식된 자루를 가진 조선시대 왕의 어도(御刀), 대한제국 황실의 칼인 예도(銳刀) 등은 철로 된 칼이 권력의 상징으로 지속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금은입사 사인검>
사인검.. 이름만 들어도 비장함이 느껴진다.
사인검.
하늘의 정기를 내리고
땅은 신령을 도우며
해와 달이 형상을 이루고
산과 강이 모양을 갖추었네.
(그리하여 사인검은)
벼락과 천둥을 지휘하고
윈시천존의 힘을 움직여
산 같은 큰 악을 물리치고
현묘한 힘으로 바름을 굳게 지키네.
만화책에서 본것 같은 한시네... *^^*
아래 사진은 어도(조선), 예도(대한제국), 곤봉(조선) 사진이다.
제일 긴 칼이 어도(御刀), 가운데 칼이 예도(禮刀), 윗쪽 짧은 곤봉(棍棒) 이다.
<통거우 12호분 고구료 벽화무덤의 개마무사>
벽화 중앙에는 갑옷 입은 무사가 긴 창을 비껴들고 갑옷으로 무장한 말 위에 올라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 왼편에는 투구를 쓰고 비늘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에서 내려 역시 비슷한 복장을 한 다른 무사의 목을 베는 참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벽화 속 전투 장면은 고대 철제 무기의 특징과 전투 기술을 추정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 문구를 안 찍어오니 이 덩이는 뭔지 잘 모르겠다. 덩이로 있으니 덩이쇠인가? ^^
철을 바탕으로 한 지배층의 권력에 대한 전시를 쭉 지나고 나면 지배층들이 철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전쟁과 관련된 철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투구와 갑옷들. 각 시대마다의 특징들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하하 ^^;;;;
<가야시대>
아래 사진의 투구와 갑옷은 삼국시대 갑옷과 투구이다.
<미늘쇠>
가야에서 발견된 미늘쇠는 대형 덩이쇠의 가장자리에 날카로은 미늘이 대칭으로 붙어있는 철기이다. 일부 미늘쇠는 날카로운 날이 있는 위치에 고사리 모양이나 새 모양 장식이 달려있다. 장식이 달린 미늘쇠는 행렬에서 긴 봉에 끼워 깃대처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늘쇠는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 권역에서만 나타나고 있어서 이 지역의 독특한 철기로 보고 있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조선시대 포환이다. 포환의 크기, 모양이 같은 시대여도 종류가 다양했구나.
<평양성 탈환도 ↓↓↓>
왜군에 비해 명나라 군사들을 더 크게 묘사했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정말 그렇네. 명나라 군사들은 용맹스러워 보이는데 왜군은 왠지 약해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부분에는 전쟁 무기의 발달에 따른 무기들의 변천사를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위 사진의 아래쪽에 가장 긴창이 조선시대 대표 무기인 당파창이다.
조선의 무예 24기 안에는 당파(钂鈀)라는 창으로 무예를 겨루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당파창은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의 일종으로 조선 보병이 주고 사용하던 무기라고 한다. 창날이 세 개나 되어 명중률리 높고 양끝이 휘어져 있어 적을 걸어 넘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긴 당파창은 7자 6치(약2.3m)가 되어 의장기를 꽂아 깃대로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길이만 해도 어마어마해서 들고 싸우려면 힘이 좋아야 했을 것 같다.
위쪽 사진 위에서부터 1 왜군의 창, 2 왜군의 칼, 3 청나라 군의 칼, 4 청나라 군의 칼
설명을 보면 우리군은 왜군에게도 밀리고 청나라 군에게도 밀리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이'의 10만 양병설 대로 미리미리 대비했다면 우리나라에 치욕의 역사는 없었을지도...
2부 마지막으로 대완구와 비격진천뢰를 볼 수 있었다. 설명은 사진을 찍어 왔는데 정작 대완구와 비격진천뢰를 찍어 오지 않았네.. 내 머리는 정말.. ㅡㅡ;;;
대완구로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데 비격진천뢰 안에 날카로운 철 조각들이 들어 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화약이 터지면서 철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적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한다. 대단~ 말로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무기이다.
'2부 철, 권력을 낳다' 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철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전쟁은 특정 집단이 정치, 경제적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쟁이라는 외적인 갈등은 파괴의 상징이지만, 내적으로는 통합을 이끌어 낸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은 철제 갑옷 같은 방어용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더 향상된 공격용 무기를 만들게 한다. 강한 창을 막기 위해 더 강한 방패를 만들게 하고, 강한 방패를 뚫기 위해 더 강한 창을 만들게 하는 철의 모순이 발생한다.
2부 전시장을 지나면 3부 '철, 삶속으로 들어오다' 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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